학문과 인지력이 발전하는 과정을 하나의 틀로 바라본다면, 저는 이를 절대성 → 상대성 → 양가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절대성 —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다
“내가 경험한 것이 사실이고,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다.”
자신이 걸어본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길을 백 번 걸었다고 해서 그것이 지름길 없는 유일한 길인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요?
경험은 검증되면 지식이 되지만, 검증되지 않은 경험은 편견과 맹신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험의 양이 아니라 검증의 깊이에 달렸습니다.
2. 상대성 — 내 지도가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같은 현상도 관점과 조건에 따라 다르게 설명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내 지도를 다른 사람의 지도와 비교하면서 내가 보지 못한 길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칼 포퍼의 오류주의처럼 우리는 진리를 소유하기보다 가설을 세우고 현실과 비교하며 틀린 설명을 제거해야 합니다.
과학의 발전은 진리를 소유하는 과정이라기보다, 틀린 설명을 제거하며 진리에 가까워지는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3. 양가성 — 가능성은 열어두되 증거에 따라 판단한다
상대성에 머물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결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양가성은 서로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되 증거에 따라 믿음의 강도를 조절하는 태도입니다.
비가 올 확률이 20%라면 비가 온다고도, 오지 않는다고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에 맞게 판단할 뿐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증거가 부족할수록 확신도 낮추는 것입니다.
4. 투자에 적용하면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차트를 맹신하면 손실이 났을 때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는 신호가 아니라 시장의 오류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차트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또 다른 절대성입니다.
워뇨띠와 같은 성공 사례는 이 명제의 반례가 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성공만으로 차트 매매의 실력이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운과 생존자 편향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성공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성과입니다.
따라서 질문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 방법이 맞는가?”
→ “이 방법은 언제 맞고, 언제 틀리는가?”
‘정답’을 찾는 사람에서 ‘조건’을 찾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5. 맺음말
인지력이 높다는 것은 정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것을 믿되,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불확실성을 열어둔 채 증거에 따라 판단하는 것.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염두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결과의 조건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투자자가 갖춰야 할 성숙한 인식에 더 가깝습니다.
정답보다 조건
- 2026. 9. 7.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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